결혼 후 첫 가족여행을 동부쪽으로 길을 잡았다. 오하이오를 거쳐 뉴저지 그리고 펜실베니아와 메릴랜드를 통과하는 길고 먼 여정이었다. 그중 가장 의미있었던 시간은 메릴랜드 헤이거스 타운에 계시는 최종수 목사님댁 방문이었다. 그곳에서 장로교 선교사 William L. Swallen (한국이름 소안론)목사의 유품을 보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현재 최종수 목사님이 소장하고 계시는 소안론 목사님의 유품은 18가지다 (유품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최목사님의 글 “옛날 창가 ‘식목가’를 다시 부르면서“를 참고하라).
소안론 목사의 유품중 1938년 4월 3일자 평양 산정현교회 주보와 소안론 목사의 설교문 뒷면에 있는 평양 장로교회 선교종합단지 도면이 눈에 들어왔다. 아래 평양 산정현교회 주보는 독립운동가이자 오산학교 교장이었던 조만식 장로의 기도와 소안론 목사의 설교를 기록하고 있다.
소안론 목사는 농과대학 출신으로 미국 북장로교회 소속 맥코믹 신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 선교사로 파송되었다 (소안론 목사의 약력은 조경현의 “순례자 ‘소안론’ 선교사“를 참조하라). 농과대학 출신답게 소안론 목사의 한국선교는 나무사랑과 깊은 관련이 있는것 같다. 최종수 목사님은 소장하고 계신 소안론 선교사님의 유품중 1920년 판 “챵가집”에서 유독 식목가에 큰 관심을 보이고 계신다. 최 목사님은 “옛날 창가 ‘식목가’를 다시 부르면서“라는 제목의 글에서 ”식목가의 가사가 문학적 세련미는 부족하지만 나무심기를 권장하는 실천성이 강하다”고 평가한다.
나무심기와 관련하여 인천제삼교회 원로목사 김광식 목사는 “소안론 선교사의 사과나무“라는 글에서 소안론 목사의 업적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소안론 선교사가 안식년 차 미국에 갔다 오면서 사과나무 묘목 300개를 부산 항구에 내렸다. 대구에 있는 선교본부에 묘목 150개를 전달하고 대구근방 기독교인에게 나누어 주어 심게 하였다. 그리고 150개는 평양에 있는 선교본부에 전달하여 평양근처, 주로 황주에 있는 신도들에게 나누어 주고 심게 하였다. 이것이 오늘의 우리나라 대구사과와 황주사과의 유래가 되었다. 그후에 우리나라 사과는 전국적으로 퍼져나갔고 종류도 개량하여 농산물 소득의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과가 미국 선교사에 의하여 전해진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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